수박을 사서 돌아가던 길이었지 옥탑을 향해 계단을 올라가다 쉬다 다시 오르면서
숫자를 세고 눈앞의 반복을 꼽아보며 나는 오로지 무게를 견뎌야 하는 순간에 집중하고 있었지
그거 알고 있니 때로 불필요한 것도 전부 갖고 싶어질 때가 있다는 거 모로 누워 핸드폰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보았지 팔 년을 돌아보며 내 몸은 가만히 있는데 이토록 많은 시공간 속에 살아 있었다는 게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게 끔찍해서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수박은 넣을 자리가 없어 베란다에 둔 채
나는 갔어 먼바다에
파라솔 대여비가 만원 텐트 치는 데 만원
누워서 끝없이 모래를 털고 털며 짜증을 냈지 바다에서 들었다
파돗소리 아이들 꺅꺅대는 비명소리 갈매기 울음소리 끝없이 떠드는 취한 어른들 높아진 목소리 나는 모든 것들 동시에 듣는다
결국 또 누워 있으려고 여기까지 온 걸까 시계가 갖고 싶고 맛있는 것도 잔뜩 먹고 싶어 누군가에게 갑자기 말을 걸고 운명처럼 친해지고 싶어 갖기 싫어 먹기 싫어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 나는 찢어지고 찢어지는 나를 구경하며
아 재미있다 아 재미있다
모래를 털고 숙소에 들어서면 모래가 밟혔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도 모래를 밟았다 이불 속에서도 서걱거림은 계속되고
어쩌면 이런 계속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
티브이를 보며 어두운 방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오늘 세상이 끝난다면 어떨까 습관적으로 말해보며
짠내가 섞인 끈적한 바람이 불어왔지 나는 어떤 기분으로 유효해질 수 있을까
그거 알아? 온도는 때로 망쳐놓는다는 거